얼마 전에 큰아들과 팔씨름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나름 체구도 좀 있고, 힘도 좀 쓴다고 자신하며 살아왔는데, 왼손잡이인 아들놈과 팔씨름을 했더니 제가 졌습니다.
아무리 제가 오른손잡이라 해도… 항상 애기 같던 아들놈에게 팔씨름을 지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시간이 좀 지난 일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그때 팔씨름이 떠오른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몰로 가는 차 안에서 큰아들놈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5월 16일이 생일인데, 생일이 지나면 운전면허를 따고 바로 차를 사고 싶다고 하더군요.
몇 개월 전부터 하던 이야기라 딱히 새롭진 않았습니다.
이미 BMW 미니를 사겠다고 차도 직접 보고 왔고, 마음의 결정도 끝낸 상태였으니까요.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몇 살부터 운전면허를 딸 수 있길래 벌써 자동차 타령을 하나’ 싶어 찾아보니, 만 17세부터 가능하더군요.
‘아니, 만 17세면 한국 나이로 18살인데… 지금 이놈이 생일 지나면 만 17세가 되는 게 맞나?’ 싶어 계산해봤습니다.
그런데… 맞더라고요.
시간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시원섭섭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앞서 이야기한 팔씨름이 떠올랐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나름 한 덩치 하시고, 리즈 시절엔 힘도 좀 쓰셨고 주먹도 좀 쓰셨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친척들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팔씨름을 이긴 게, 아마도 중학교 졸업할 무렵이었던 것 같네요.
제 키가 중학교 2학년 때 키였던 걸 감안하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 상황을 제가 겪으니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우리 아버지는 어떤 기분이셨을까.’ 철부지 막내아들이 자신과의 팔씨름에서 이겼을 때… ‘많이 컸구나’라는 생각만으로 끝나지 않으셨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아버지 자신도 지금의 저처럼, ‘나는 늙어가고 그 자리를 아들이 채워가고 있구나’ 하는 대견함도 느끼셨겠지만, 또 다른 묘한 감정도 함께 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그렇거든요.
피지컬로는 어디 가서 지는 체형이 아닌데… 항상 애기 같던 아들에게 팔씨름을 지고, 그런 아들이 이제 운전을 하겠다고 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무언가를 항상 대신해 주고 해결해 주는 아버지에서, 이제는 인생의 조언을 해주는 위치로 변해가는 저 자신을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이 넷인지라, 그리고 막내들과는 나이 차이가 좀 나다 보니 요즘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큰놈들을 보면서는 ‘참 우여곡절 많은 시간을 지나 잘 크고 있구나’ 싶다가도, 막내들을 보면 ‘이제 겨우 애기인데…’ 하는 마음이 들죠.
항상 애기 같다고 느꼈던 큰놈들이 이제는 나를 대신할 만큼 커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또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내 아버지도 나에게 팔씨름을 지셨을 때 허허허~ 하고 웃으셨지만, 당시엔 말씀은 안 하셨어도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을 비슷하게 경험하셨겠죠.
저는 아직 부모님 앞에서는 쉰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철없는 막내아들인데…
부모님도 저와 같은 생각과 느낌, 감정을 느끼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왠지 뭉클해지네요.
아버지, 아버지는 저에게 팔씨름을 지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