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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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7장

그 시절에는 회식이 많았다.

프로젝트가 시작해도 회식했고, 끝나도 회식했다. 사람이 들어와도 회식했고, 나가도 회식했다. 별일이 없어도 금요일이면 누군가 말했다.

“오늘 한잔하시죠.”

거절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확히는 거절하기 어려웠다.

퇴근 시간이 되면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시다.”

그러면 다들 컴퓨터를 끄고 따라 나갔다.

1차는 고깃집이었다.

삼겹살이나 갈비를 먹었다.

테이블마다 소주병이 놓였다.

업무 시간에는 조용하던 사람도 술이 들어가면 말을 많이 했다.

누가 누구와 친한지, 누가 어느 팀으로 옮길지, 다음 프로젝트는 어디에서 시작할지.

그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공식적인 회의에서는 듣지 못했던 내용도 많았다.

“다음 프로젝트 OO 쪽으로 갈 수도 있대.”

“누가 그래?”

“부장님이 아까 그러던데.”

“진짜?”

“아직 확정은 아니고.”

그런 말들이 술잔 사이로 흘러다녔다.

확정되지 않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상하게 중요한 이야기도 많았다.

가끔은 며칠 뒤 정말 그렇게 됐다.

1차가 끝나면 누군가 말했다.

“맥주 한잔만 더 하죠.”

2차는 호프집이었다.

이미 배가 불렀지만 마른안주가 또 나왔다.

사람들은 조금 더 흩어져 앉았다.

그때부터 자리가 중요했다.

팀장 옆에 앉는 사람.

부장 옆에 앉는 사람.

같이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사람 옆에 앉는 사람.

나는 그런 걸 일부러 계산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 자리가 나는 곳에 앉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늘 비슷한 사람들 옆에 앉았다.

편한 사람들.

같이 일하던 사람들.

기술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또 자기들끼리 가까이 앉았다.

나는 가끔 그쪽 이야기를 들었다.

새로운 서버가 어떻고.

오픈소스가 어떻고.

어느 회사에서 뭘 쓴다더라.

알아듣는 이야기가 나오면 끼어들었다.

모르는 이야기가 나오면 술을 마셨다.

누군가 담배를 피우러 나가면 몇 명이 따라 나갔다.

그때는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곳도 많았지만, 식당이나 호프집에 따라 복도나 계단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상하게 중요한 이야기는 그런 데서 많이 나왔다.

“다음 건 그 사람한테 맡겨볼까?”

“괜찮죠.”

“그 친구 일은 잘하잖아.”

“근데 설계 쪽은 좀 약하지 않아요?”

“그럼 그쪽은 다른 사람이 보고.”

담배 한 대 피우는 동안 역할이 대충 정해지기도 했다.

회의실에서 정식으로 정하기 전에 이미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식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자리에 자주 있었다.

나는 아니었다.

담배를 안 피웠다.

술은 마셨지만 오래 남는 편도 아니었다.

다음 날 출근해야 했고, 집도 멀었다.

그래도 2차 정도까지는 거의 따라갔다.

3차로 노래방 이야기가 나오면 슬슬 빠졌다.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벌써?”

“집이 좀 멀어서요.”

“내일 토요일이잖아.”

“그래도 가봐야죠.”

몇 번은 끝까지 남기도 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늘 마이크를 잡았다.

팀장은 좋아하는 노래가 정해져 있었다.

다들 박수를 쳤다.

누가 술에 취해 속에 있던 말을 꺼내기도 했다.

“팀장님, 저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다른 거 해보고 싶습니다.”

“뭐 하고 싶은데?”

“설계 쪽이요.”

“그래? 한번 보자.”

다음 날이면 아무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몇 달 뒤 그 사람이 정말 다른 역할을 맡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런 걸 보면서도 직접 말하지는 않았다.

굳이 술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해야 하나 싶었다.

일을 잘하면 알아서 봐주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꽤 오래.

한 번은 프로젝트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나는 몇 달 동안 외부 연동과 운영 이슈를 거의 혼자 처리하고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나를 찾았다.

“이거 왜 안 돼요?”

“저쪽에서 값 이상하게 준 것 같은데요.”

“운영에서만 오류 난대요.”

나는 하나씩 해결했다.

어느 날 부장이 나를 불렀다.

“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다음 것도 같이 가야지?”

나는 조금 망설였다.

“어떤 역할인데요?”

“비슷하지 뭐. 연동 쪽 보고, 운영 넘어갈 때 안정화하고.”

또 그 일이었다.

나는 말했다.

“저도 다음에는 설계 쪽을 좀 해보고 싶은데요.”

부장이 나를 봤다.

“설계?”

“네.”

“갑자기?”

그 말이 조금 걸렸다.

“갑자기는 아니고요.”

“그런 얘기 한 적 있었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 적이 없었다.

생각은 많이 했다.

불만도 있었다.

그런데 누구에게 제대로 말한 적은 없었다.

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이번 건 이미 사람이 정해졌어. 다음에 한번 보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자리로 돌아오면서 기분이 나빴다.

이미 사람이 정해졌다는 말이 싫었다.

언제 정했는데.

누가 정했는데.

왜 나는 몰랐는데.

그날 회식이 있었다.

프로젝트 막바지라 다들 지쳐 있었지만 사람이 많이 모였다.

1차가 끝나고 2차로 이동했다.

나는 평소보다 술을 조금 많이 마셨다.

옆자리 선배가 말했다.

“너 다음 프로젝트도 간다며?”

“그런가 봐요.”

“이번에도 연동?”

“네.”

선배가 웃었다.

“너 그거 잘하잖아.”

나는 웃지 않았다.

“잘한다고 계속 그것만 해야 돼요?”

선배가 나를 봤다.

“왜, 다른 거 하고 싶어?”

“설계 같은 것도 해보고 싶죠.”

“그럼 말을 하지.”

나는 순간 짜증이 났다.

“말한다고 시켜줘요?”

“안 말하면 더 모르지.”

별것 아닌 말이었다.

그런데 꽤 오래 남았다.

나는 술잔을 들었다.

“다들 알아서 챙기는 줄 알았죠.”

선배가 웃었다.

“회사에서 누가 네 인생을 알아서 챙겨주냐.”

말투는 가벼웠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2차가 끝나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누군가는 3차를 가자고 했다.

나는 택시를 잡았다.

그날 집에 가는 길에 창밖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회사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정작 내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는 제대로 말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기회를 받았다.

그들이 더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가까운 사람들과 더 많이 이야기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학벌이 영향을 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 남들보다 오래 남아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때는 그런 것들이 전부 섞여 있었다.

일과 사람과 술과 관계가 지금보다 훨씬 덜 분리되어 있었다.

좋은 점도 있었다.

같이 밤을 새우고, 같이 욕하고, 같이 술을 마시다 보면 친해졌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전화 한 통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생겼다.

누군가 회사를 옮기면 몇 달 뒤 연락이 왔다.

“사람 뽑는데 올래?”

그렇게 자리를 옮기는 사람도 많았다.

나도 몇 번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그 문화를 전부 나빴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안에 잘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문이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던 건 아니다.

손잡이가 어디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몇 년이 지나면서 회식은 조금씩 줄었다.

사람들도 예전처럼 새벽까지 남지 않았다.

회사에서 술을 강요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생겼고, 저녁이 개인의 시간이라는 생각도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그 변화가 좋았다.

집에 일찍 갈 수 있었다.

싫은 자리에 억지로 앉아 있지 않아도 됐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도 눈치를 덜 봤다.

그런데 가끔은 예전 사람들과 만나면 밤늦게까지 이야기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옛날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진짜 미쳤었지.”

“맨날 술 먹고 다음 날 출근하고.”

“그걸 어떻게 했나 몰라.”

다들 웃었다.

좋았던 기억처럼 이야기했다.

정말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좋아서 가까웠던 건지,

도망갈 시간이 없어서 가까웠던 건지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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