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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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9장

회의 중에 처음 듣는 말이 나왔다.

새로 들어온 개발자가 자료를 설명하다가 말했다.

“여기는 RAG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나는 알아듣지 못한 건 아니었다.

RAG가 뭔지는 알고 있었다.

다만 지금 이 기능에 왜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었다.

그때 막내 개발자가 바로 물었다.

“근데 여기서 RAG를 왜 써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질문이 너무 쉽게 나왔다.

발표하던 개발자가 말했다.

“아, 그건요. 외부 문서가 자주 바뀌니까 모델에 다 넣는 것보다 필요할 때 가져오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막내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냥 검색 붙이면 되는 거 아니에요?”

회의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나는 속으로 조금 놀랐다.

저렇게 물어봐도 되나.

발표하던 개발자는 별로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맞아요. 사실 구조만 보면 검색이랑 비슷합니다. 다만 검색 결과를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모델이 그걸 보고 답을 만드는 거죠.”

“아.”

막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노트북을 두드렸다.

몇 초 뒤 또 말했다.

“근데 검색 품질 안 좋으면 답도 이상해지는 거죠?”

“그렇죠.”

“그럼 임베딩 모델도 같이 봐야겠네요?”

“네. 그게 중요합니다.”

나는 막내 화면을 힐끗 봤다.

AI 창이 열려 있었다.

방금 회의에서 나온 단어들을 그대로 적어 넣고 있었다.

RAG와 일반 검색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해줘.

임베딩 모델 선택이 검색 품질에 미치는 영향은?

나는 다시 화면을 봤다.

저 친구는 모르는 걸 숨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회의 중에 묻고, 바로 AI에게 또 묻고, 답이 이상하면 다시 질문했다.

예전 같으면 나는 저렇게 못 했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안 했다.

모르는 말이 나오면 수첩 한쪽에 적어뒀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아는 척할 수 있으면 아는 척했다.

적당한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였고, 누가 “아시죠?”라고 물으면 대부분 “네”라고 했다.

회의가 끝난 뒤 자리로 돌아와 검색했다.

검색해도 잘 모르겠으면 책을 찾았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그제야 누군가에게 물었다.

그 순서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모른다는 걸 들키는 게 싫었다.

특히 나보다 학벌 좋은 사람이 앞에 있으면 더 그랬다. 나는 전문대를 나왔고, 그들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학을 나왔다.

아무도 그걸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나는 늘 의식했다.

질문 하나 잘못하면 ‘역시 저 정도구나’라는 표정을 볼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없는 표정도 오래 상상하면 진짜처럼 느껴진다.

회의가 끝나자 막내가 내 자리로 왔다.

“선배님.”

“왜?”

“아까 RAG 얘기요.”

“응.”

“이거 검색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나는 웃었다.

“방금도 그거 물어봤잖아.”

“설명은 들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럼 더 물어봐.”

“누구한테요?”

나는 막내 화면을 가리켰다.

“걔한테.”

막내가 웃었다.

“이미 물어봤는데요.”

“뭐래?”

“말을 너무 잘해서 더 헷갈려요.”

나도 웃었다.

그 말이 조금 이해됐다.

AI는 모르는 걸 설명해주지만, 설명을 잘하는 것과 이해시키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막내가 의자를 끌고 앉았다.

“선배님은 처음에 이런 거 어떻게 공부했어요?”

“이런 거?”

“새로운 기술 나왔을 때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책 샀지.”

“또 책.”

“왜.”

“선배님 얘기 들으면 옛날 개발자는 맨날 책 사요.”

“자료가 없었으니까.”

“그럼 책에 답 없으면요?”

“사람한테 물어봤고.”

“그럼 사람도 모르면요?”

“그냥 해봤지.”

막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랑 비슷하네요.”

“뭐가.”

“우리도 AI한테 물어보고, 안 되면 사람한테 물어보고, 그래도 안 되면 해보잖아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비슷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나는 그때 배우기 위해 고생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애들은 너무 쉽게 답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순서만 보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건 속도였다.

우리는 답 하나 찾는 데 하루가 걸렸고, 지금은 몇 초면 답이 나왔다. 문제는 답이 너무 빨리 나오면 왜 그런 답이 나왔는지 생각할 시간이 같이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막내가 다시 말했다.

“근데 전 잘 모르겠으면 그냥 물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그건 맞지.”

“괜히 아는 척하다가 사고 나면 더 큰일이잖아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예전에 아는 척하다가 여러 번 사고를 냈다.

모르는 걸 숨기려고 질문을 안 했고, 나중에 혼자 알아보다가 잘못 이해한 채 개발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걸 실수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존심 문제였던 적도 많았다.

막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좀 더 봐볼게요.”

“그래.”

“모르면 또 물어볼게요.”

“누구한테?”

막내가 웃었다.

“둘 다요.”

AI와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나는 손을 휘저었다.

“가서 일해.”

막내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한동안 그 뒷모습을 봤다.

젊었을 때 나는 저런 사람이 아니었다.

모르면 숨겼고, 틀리면 들키지 않기를 바랐고, 나보다 잘 아는 사람 옆에서는 더 조용해졌다.

그게 겸손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사실은 겁이었던 것 같다.

내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그게 학력 때문인지, 능력 때문인지, 둘 다인지 누군가가 알아챌 것 같았다. 지금의 젊은 개발자들은 그런 걸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내가 보는 몇 명은 그랬다.

모르면 모른다고 했고, 필요하면 바로 찾아봤고, 답을 얻으면 다음으로 넘어갔다.

가끔은 너무 쉽게 넘어가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

왜 그런지 이해하지 않고 코드만 복사해서 붙이는 모습도 자주 봤다.

“이거 왜 이렇게 한 거야?”

물으면 대답은 비슷했다.

“검색해보니까 이렇게 하라고 해서요.”

요즘은 거기에 한마디가 더 붙었다.

“AI가 이렇게 짜줬어요.”

그 말을 들으면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개발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기술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고, 잘 돌아가면 그만인 것처럼 보이는 친구도 있었다.

점심을 먹다가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개발 재미있냐?”

그 친구는 별 고민 없이 대답했다.

“그냥 일이죠.”

“그래도 이거 좋아서 하는 거 아니야?”

“전 돈 벌려고 하는 건데요.”

너무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우리 때는 안 그랬다고 말하려다 그만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도 돈 벌려고 회사에 다녔다.

나도 월급 때문에 회사를 옮겼고, 돈을 더 준다는 곳이 있으면 흔들렸다. 개발이 재미있던 순간도 있었지만, 매일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때는 기술을 모르면 일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싫든 좋든 이해해야 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해도 일단 만들 수 있는 일이 늘어났다.

그 차이가 컸다.

오후에 그 젊은 개발자가 코드 리뷰를 올렸다.

나는 코드를 읽다가 한 부분에서 멈췄다.

동작은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왜 그렇게 했는지가 궁금했다.

댓글을 달았다.

이 방식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몇 분 뒤 답이 왔다.

AI가 이 패턴을 추천해서 적용했습니다.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잠깐 생각했다.

왜 이 패턴이 맞는지도 확인해보세요.

라고 쓰려다가 지웠다.

대신 이렇게 적었다.

이 코드가 어떤 상황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지 한번 AI한테 물어보고, 답을 보고 다시 판단해보세요.

전송했다.

조금 뒤 답이 왔다.

아, 이 경우에는 문제될 수 있네요. 수정하겠습니다.

나는 화면을 바라봤다.

조금 이상했다.

나는 AI를 못 믿겠다고 생각하면서, AI에게 더 잘 물어보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막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선배님,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아까 그거 수정했어요.”

“봤어.”

“감사합니다.”

그 친구는 가방을 들고 나갔다.

나는 다시 모니터를 봤다.

AI 창에는 오전에 물어본 질문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RAG. 임베딩. 검색 품질.

나는 입력창에 한 문장을 적었다.

모르는 걸 빨리 묻는 것과 직접 공부해서 이해하는 것의 차이는 뭘까?

잠시 뒤 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읽지 않았다.

질문을 지웠다.

그건 AI에게 물을 질문이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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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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