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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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14장

그 젊은 개발자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한 건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뒤였다.

처음에는 다른 회사로 옮기는 줄 알았다.

“어디 가는데?”

내가 물었다.

그 친구는 잠깐 웃었다.

“아직 없어요.”

“없다고?”

“네. 그냥 좀 쉬려고요.”

나는 의외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다음 데 정하고 나가는 거 아니고?”

“네.”

“괜찮겠어?”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한번 생각 좀 해보려고요.”

“뭘?”

“계속 개발할지요.”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 친구는 나보다 스무 살 이상 어렸다. 이제 막 경력이 쌓이기 시작한 나이였다.

내 눈에는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 보였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그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앞으로 계속 이걸 해야 하나 싶어요.”

“개발이 싫어졌어?”

“싫은 건 아닌데요.”

그가 잠깐 생각했다.

“예전에는 그냥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공부하고, 경력 쌓고, 잘하면 계속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그는 웃었다.

“AI도 그렇고, 회사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뭘 준비해야 되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 말을 들으니 이상했다.

나는 젊었을 때 미래가 없어서 불안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래서 오히려 괜찮았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만 생각했다.

이 친구는 반대였다.

할 수 있는 선택이 많았고, 정보도 많았고, 앞으로 바뀔 가능성도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막막해 보였다.

“뭐 하고 싶은 건 있는데?”

“그것도 모르겠어요.”

그가 웃었다.

“좀 생각해보고요.”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며칠 뒤 퇴사 공지가 올라왔다.

팀 메신저에 사람들이 한마디씩 남겼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나가서도 연락해요 :)

나도 비슷한 말을 적었다.

마지막 날에는 작은 송별회가 있었다.

예전처럼 술집에서 새벽까지 있지는 않았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끝났다.

그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선배님 오래 하신 거 보면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나는 웃었다.

“하다 보니 한 거지.”

“저는 그렇게 오래 할 자신이 없어요.”

“나도 스물몇 살 때는 이 나이까지 할 줄 몰랐어.”

“그럼 어떻게 이렇게 오래 하셨어요?”

이번에는 내가 잠깐 생각했다.

“그냥 다음 일이 있었으니까.”

“다음 일이요?”

“응. 하나 끝나면 또 뭐가 있었어.”

그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별 도움은 안 된 답이었을 것이다.

퇴사 다음 날 그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모니터도 치워졌고, 책상 위에 있던 작은 인형도 없어졌다.

처음 며칠은 눈에 띄었다.

점심을 먹으러 갈 때도 한 명이 줄었다는 게 느껴졌다.

회의할 때 누군가가 그 친구가 맡던 일을 물었다.

팀장이 말했다.

“그 부분은 일단 나눠서 보죠.”

담당 업무가 몇 사람에게 나뉘었다.

나도 하나를 받았다.

예전 같으면 새 사람을 뽑는 이야기가 먼저 나왔을 것이다.

이번에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팀장이 말했다.

“반복되는 부분은 AI로 최대한 줄여보세요.”

그 친구가 하던 분석 업무 중 일부는 정말 그렇게 됐다.

문서를 넣으면 요약이 나왔고,

기존 코드를 넣으면 흐름이 정리됐고,

테스트 케이스 초안도 금방 만들어졌다.

완전히 대신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분명한 건,

사람이 한 명 빠졌는데도 당장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불편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다.

업무가 멈추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 입장에서도 예전처럼 야근이 크게 늘지는 않았다.

AI가 어느 정도 빈자리를 메웠다.

나는 가끔 그 친구 자리를 봤다.

처음에는 비어 있는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몇 주 지나자 익숙해졌다.

누가 앉았는지도 잠깐 생각해야 떠오를 정도가 됐다.

그게 더 이상했다.

사람이 사라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빈자리에 익숙해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점심을 먹다가 막내가 말했다.

“요즘 그 형 뭐 한대요?”

“몰라. 연락 안 해봤는데.”

“저번에 SNS 보니까 여행 갔던데요.”

“그래?”

“부럽더라고요.”

“너도 그만두려고?”

막내가 웃었다.

“아직은요.”

그 말을 듣고 나도 웃었다.

예전에는 아직은이라는 말을 희망처럼 썼다.

아직은 괜찮다.

아직은 일이 있다.

아직은 필요하다.

요즘은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다는 뜻에 가까웠다.

오후에 팀장이 나를 불렀다.

“선배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회의실로 들어갔다.

팀장은 다음 분기 인력 계획 자료를 띄웠다.

“이번에 운영 쪽 일부를 AI로 자동 분석하는 PoC를 해보려고 합니다.”

나는 화면을 봤다.

장애 로그 수집.

관련 배포 내역 확인.

과거 유사 장애 검색.

원인 후보 정리.

내가 오랫동안 해온 일들이 항목으로 적혀 있었다.

팀장이 말했다.

“선배님이 이쪽 제일 잘 아시니까 같이 봐주셨으면 해서요.”

나는 웃었다.

“내 일 없애는 걸 내가 만드는 거야?”

팀장도 웃었다.

“그렇게까지는 아니죠.”

농담처럼 지나갔다.

나도 농담처럼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회의실을 나와 자리로 돌아오면서 그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내가 잘하는 일을,

내가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자동화하기에도 내가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

아이러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는 게 맞았다.

나는 노트북을 열었다.

AI 창도 같이 열었다.

그리고 새 문서를 하나 만들었다.

운영 장애 분석 자동화 PoC

제목을 적고 잠시 멈췄다.

첫 번째 항목을 썼다.

장애 발생 시 가장 먼저 확인할 정보

예전 같으면 후배에게 설명했을 내용이었다.

이제는 시스템에게 설명하려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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