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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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16장

다음 날 회의실에는 세 명이 앉아 있었다.

팀장과 막내 개발자, 그리고 나.

화면에는 전날 정리한 문서가 떠 있었다.

운영 장애 분석 자동화 PoC

팀장이 말했다.

“일단 목표를 너무 크게 잡지는 말죠.”

“어디까지 생각하는데?”

내가 물었다.

“장애가 났을 때 로그하고 배포 내역, 과거 장애 기록 같은 걸 모아서 원인 후보를 정리해주는 정도요.”

막내가 말했다.

“그러면 사람이 처음부터 다 뒤지는 시간은 줄겠네요.”

“그게 목적이지.”

나는 화면을 넘겼다.

장애가 발생하면 내가 보통 확인하는 순서를 적어두었다.

최근 배포.

에러 로그.

특정 시간대 트래픽.

DB 상태.

외부 시스템 응답.

과거 유사 장애.

업무 예외 조건.

막내가 화면을 보다가 말했다.

“이거 거의 선배님 머릿속인데요.”

나는 웃었다.

“그러네.”

팀장도 웃었다.

“그래서 선배님이 필요한 거죠.”

그 말이 묘하게 들렸다.

내가 필요해서,

내가 필요하지 않게 될 수도 있는 걸 만드는 자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생각이 처음만큼 이상하지 않았다.

개발하면서 비슷한 일을 많이 해왔다.

사람이 손으로 하던 일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엑셀로 하던 걸 시스템으로 옮겼고,

전화로 확인하던 걸 API로 바꿨고,

밤마다 사람이 실행하던 작업을 배치로 돌렸다.

그때마다 누군가의 일이 줄었다.

그리고 다른 일이 생겼다.

이번에도 그런 것일 수 있었다.

아닐 수도 있었다.

그건 아직 아무도 몰랐다.

팀장이 말했다.

“그럼 실제 장애 하나 가지고 해보죠.”

나는 최근 장애 기록을 하나 골랐다.

결제 이후 주문 생성이 늦어진 건이었다.

예전에 내가 직접 원인을 찾았던 문제와 비슷했다.

로그를 모았다.

배포 이력을 붙였다.

관련 서비스 구조도 간단히 설명했다.

막내가 AI 창을 열었다.

“그냥 바로 넣어볼까요?”

“잠깐.”

내가 말했다.

“바로 원인 찾으라고 하지 말고.”

“그럼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입력했다.

이 장애를 분석하기 전에 추가로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먼저 질문해줘.

막내가 화면을 봤다.

“왜 이렇게 해요?”

“정보 부족한데 답부터 하게 하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으니까.”

몇 초 뒤 AI가 질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장애 발생 시각 전후의 배포 내역이 있습니까?

외부 결제 시스템 응답 시간 변화가 있었습니까?

DB 커넥션 및 트랜잭션 관련 지표가 있습니까?

동일 시간대 트래픽 증가가 있었습니까?

나는 하나씩 읽었다.

괜찮았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막내가 말했다.

“이 정도면 처음 보는 사람도 따라가겠는데요?”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선배님 없을 때도 어느 정도는 되겠네요.”

막내는 별뜻 없이 말했다.

나는 웃었다.

“그게 목표잖아.”

말하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전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 내 자리가 줄어드는 것부터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것만 생각해봐야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AI가 물어본 질문에 필요한 정보를 추가했다.

다시 분석을 시켰다.

이번에는 원인 후보가 세 개로 줄었다.

외부 API 응답 지연.

재시도 과정에서 처리 순서 꼬임.

특정 상태값 업데이트 실패.

우리는 하나씩 확인했다.

첫 번째는 아니었다.

두 번째도 아니었다.

세 번째에서 이상한 로그가 발견됐다.

막내가 말했다.

“진짜 이거 같은데요?”

나는 로그를 조금 더 봤다.

“아직.”

“왜요?”

“이 값이 왜 안 바뀌었는지를 봐야지.”

코드를 따라갔다.

예외 조건 하나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추가된 로직이었다.

특정 결제 방식에서만 다른 흐름을 타도록 되어 있었다.

주석은 없었다.

티켓 번호 하나만 남아 있었다.

나는 번호를 검색했다.

몇 년 전 티켓이 나왔다.

당시 장애 때문에 급하게 추가한 예외였다.

막내가 말했다.

“또 옛날 정책이네요.”

“그러게.”

AI에게 티켓 내용까지 넣었다.

다시 물었다.

이 정보까지 포함해서 장애 원인을 다시 정리해줘.

이번에는 거의 맞았다.

막내가 말했다.

“와.”

팀장도 화면을 한참 봤다.

“이거 생각보다 되겠는데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절반쯤 됐다.

AI는 정보를 주면 잘 정리했다.

질문도 꽤 잘했다.

그런데 어떤 정보를 줘야 하는지는 아직 사람이 많이 알고 있었다.

티켓 번호를 찾아야 한다는 것.

그 티켓이 지금도 의미가 있다는 것.

코드에 남은 이상한 조건이 실수가 아니라 과거 장애의 흔적일 수 있다는 것.

그걸 처음부터 알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정보도 계속 넣다 보면 달라질 수 있었다.

과거 티켓을 전부 검색할 수 있게 하고,

문서를 연결하고,

코드 변경 이력까지 함께 보게 하면.

언젠가는 내가 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찾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더 잘할 수도 있었다.

팀장이 말했다.

“이거 제대로 만들면 운영 대응 방식이 많이 바뀌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

“선배님 생각은 어떠세요?”

“뭐가?”

“될 것 같아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경험을 근거로 가능성을 말했을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어렵다.

데이터가 부족하다.

운영 정보가 정리되어 있지 않다.

예외가 너무 많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모르겠는데.”

팀장이 웃었다.

“선배님도 모르세요?”

“응.”

나는 화면을 봤다.

“해봐야 알지.”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해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책 한 권이 책상 위에 떨어졌다.

툭.

이거 써봤어?

아니요.

나도 안 써봤어.

이번에 이걸로 해야 된대.

그때도 아무도 몰랐다.

우리는 책을 펼쳤고,

설치했고,

실패했고,

다시 했다.

지금은 책 대신 AI 창이 열려 있었다.

방법은 달랐다.

속도도 달랐다.

내 나이도 달랐다.

그때는 스물몇 살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경력도,

연봉도,

지켜야 할 자리도 없었다.

모른다는 게 별로 무섭지 않았다.

지금은 달랐다.

쉰을 앞두고 있었다.

오래 쌓은 경력이 있었고,

그 경력만큼의 연봉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고,

내년 계약을 걱정해야 했다.

모른다는 말이 예전처럼 가볍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일은 똑같았다.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그런데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

회의가 끝난 뒤 막내가 내 자리로 따라왔다.

“선배님.”

“왜?”

“아까 그거 조금 더 해봐도 돼요?”

“뭘?”

“장애 분석이요. 과거 티켓까지 자동으로 찾게 하면 더 잘될 것 같은데.”

나는 의자를 옆으로 밀었다.

“앉아.”

막내가 노트북을 들고 왔다.

우리는 화면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

나는 말했다.

“일단 실제 장애 하나 더 해보자.”

“네.”

“이번에는 내가 답 알고 있는 걸로.”

“왜요?”

“얘가 어디까지 찾나 보게.”

막내가 웃었다.

“테스트네요.”

“그렇지.”

우리는 몇 년 전 장애 하나를 골랐다.

로그를 넣고,

관련 코드 일부를 넣고,

배포 기록을 연결했다.

AI가 질문했다.

우리가 답했다.

다시 질문했다.

막내가 말했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는데요?”

나는 웃었다.

“그러게.”

한참 뒤 AI가 원인 후보를 내놨다.

완전히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까웠다.

나는 틀린 부분을 지적했다.

AI가 다시 답했다.

조금 더 가까워졌다.

막내가 물었다.

“이거 계속 학습시키면 결국 선배님처럼 되는 거 아니에요?”

나는 화면을 보면서 말했다.

“나보다 잘할 수도 있지.”

말하고 나니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막내가 나를 봤다.

“그럼 선배님은 뭐 하세요?”

나는 웃었다.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안 불안하세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화면을 봤다.

불안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자동화되는 과정을 직접 보고 있었다.

몇 달 뒤,

몇 년 뒤,

개발자가 몇 명이나 필요할지 몰랐다.

내 경력이 계속 가치가 있을지도 몰랐다.

내년 계약조차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는 그것보다 다른 생각이 더 컸다.

이게 어디까지 될까.

나는 AI 창에 새로운 질문을 적었다.

지금까지 제공된 정보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원인을 확정하기 위해 추가로 확인해야 할 항목을 우선순위대로 질문해줘.

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막내가 화면을 읽다가 말했다.

“이거 될 것 같아요?”

나는 웃었다.

“모르지.”

그리고 엔터키를 한 번 더 눌렀다.

“그러니까 해보는 거고.”

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였다.

이번에도 내가 끝까지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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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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