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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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6장

전날 밤 뉴스에서는 닷컴 기업들의 몰락을 이야기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공 신화의 주인공처럼 소개되던 회사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투자금이 끊기고,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고, 문을 닫는 벤처기업이 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화면 아래로 회사 이름들이 지나갔다.

아는 이름도 있었고 처음 보는 이름도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신문 경제면에 크게 실렸던 회사도 있었다.

나는 뉴스를 보면서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미 주변에서 비슷한 일을 너무 많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없어지는 일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했는데 대표가 사람들을 회의실로 불러놓고 말했다.

“이번 달까지만 운영합니다.”

누군가는 놀랐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다.

주변에도 비슷한 회사가 많았다.

얼마 전까지 사람을 뽑던 회사가 몇 달 뒤 문을 닫았고, 투자받았다는 소문이 돌던 회사가 월급을 못 준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명함에 적힌 회사 이름이 자주 바뀌던 시절이었다.

사람들도 이상할 만큼 빨리 움직였다.

같이 일하던 사람이 한 달 뒤 다른 회사에서 연락해오기도 했고, 거래처 직원이 갑자기 경쟁사 직원이 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그때는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이 능력인지 운인지 잘 구분되지 않았다.

나도 몇 번 자리를 옮겼다.

다행히 일은 있었다.

웹을 만들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면접을 볼 수 있었고, 자바를 조금 안다고 하면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회사도 있었다.

경력 몇 년이 쌓이자 면접도 쉬워졌다.

“JSP 할 줄 아시죠?”

“네.”

“오라클은요?”

“해봤습니다.”

“그럼 됐네요.”

그 정도로 결정되는 곳도 있었다.

나는 내가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를 가도 해야 할 일은 있었고, 일을 맡기면 어떻게든 끝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책을 샀다.

며칠 보다가 필요한 만큼 익혔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또 다른 곳으로 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회사에 개발팀이라는 게 생겼다.

정확히는 전에도 있었지만, 전보다 이름과 역할이 분명해졌다. 기술팀. 플랫폼팀. 아키텍처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기술을 검토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공통 모듈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전에는 다 같이 만들던 일을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는 먼저 정하고, 누군가는 그 결정대로 만들었다.

나는 주로 후자였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다.

정해진 게 있으면 편했다.

어떤 방식으로 만들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공통 모듈을 가져다 쓰고, 정해진 규칙에 맞춰 개발하면 됐다.

일도 빨랐다.

그런데 회의가 늘어나면서 조금씩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회의에는 내가 불리지 않았다.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검토하는 자리. 공통 구조를 정하는 자리. 다음 프로젝트의 기술 구성을 논의하는 자리.

나중에 결과만 전달받았다.

“이번부터는 이걸로 갑니다.”

누군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게 반복됐다.

처음에는 경력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연차의 동료가 그 회의에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됐다.

그 친구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학을 나왔다.

또 다른 사람도 비슷했다.

둘은 원래 친했다.

학교가 같은 건 아니었지만 서로 아는 선후배가 겹쳤고, 개발자 모임도 같이 다녔다.

점심시간에도 기술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요즘 이쪽은 다 이 방식으로 간대.”

“그 논문 봤어?”

“저번 세미나에서 나온 얘기인데.”

나는 그 옆에서 밥을 먹다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알아듣는 이야기도 있었고, 모르는 이야기도 있었다.

모르는 말이 나오면 그냥 넘어갔다.

“그게 뭐예요?”

라고 물으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보다,

내가 왜 모르는지를 들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근거는 없었다.

아무도 내 학력을 가지고 뭐라고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자꾸 의식했다.

전문대를 나왔다는 걸.

누가 어느 학교 출신이라고 이야기하면 괜히 조용해졌다. 회식 자리에서 학교 이야기가 나오면 화제를 바꾸고 싶었다. 누가 “어디 나오셨어요?”라고 물으면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지만, 그 질문을 받은 것만으로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아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신경 썼다.

한 번은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였다.

기술 검토를 맡을 사람을 정하는 회의가 있었다.

나는 그 회의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중에 팀장이 와서 말했다.

“이번에 화면 쪽이랑 외부 연동 맡아줘.”

“네.”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잠깐 있다가 물었다.

“기술 쪽은 누가 봐요?”

팀장이 두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역시 그들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와 조금 화가 났다.

왜 나는 안 되는 건데.

그 질문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내가 못해서인가.

학벌 때문인가.

아니면 그냥 저 사람들이 더 잘해서인가.

셋 중 어느 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은 더 싫었다.

며칠 뒤 그 두 사람이 회의실에서 늦게까지 뭔가를 보고 있었다. 퇴근하려고 가방을 들고 나오다가 유리문 너머로 보였다.

노트북 두 대와 책 몇 권이 펼쳐져 있었다.

화이트보드에는 네모와 화살표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한 사람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퇴근하세요?”

“네.”

“고생하셨어요.”

“네. 먼저 갑니다.”

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기 전에 회의실을 한 번 더 봤다.

그날 집에 가면서 생각했다.

쟤들은 저렇게까지 하니까 맡는 건가.

그 생각이 들자 기분이 더 나빠졌다.

차라리 학벌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편했다.

그건 내가 지금 바꿀 수 없는 일이니까.

실력이 부족해서라면 내가 뭔가 해야 했다.

그런데 뭘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책을 더 봐야 하나.

세미나를 다녀야 하나.

퇴근하고 공부해야 하나.

며칠 동안 생각만 했다.

그리고 결국 평소처럼 일했다.

그 주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외부 업체와 연동 테스트를 했고, 데이터 형식이 맞지 않아 하루를 썼다. 운영에서만 재현되는 오류가 하나 있었고, 그것도 내가 맡았다.

금요일 밤에는 급하게 수정해서 배포했다.

다음 주가 되자 새로운 일이 또 생겼다.

나는 바빴다.

바쁘다는 건 편리했다.

생각을 미룰 수 있었다.

몇 달 뒤 프로젝트가 끝났다.

사내 게시판에 프로젝트 성과가 올라왔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했고, 공통 구조를 정립했고, 앞으로 다른 프로젝트에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술 검토를 맡았던 두 사람의 이름이 앞쪽에 있었다.

내 이름도 있었다.

조금 아래에.

외부 시스템 연동 및 운영 안정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문장을 한동안 바라봤다.

운영 안정화.

좋은 말이었다.

없으면 곤란한 일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창을 닫았다.

그날 저녁 회식이 있었다.

프로젝트 종료 회식이었다.

팀장이 술잔을 들고 말했다.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박수가 나왔다.

사람들이 서로 잔을 채웠다.

기술 검토를 맡았던 동료가 내 옆으로 와서 잔을 부딪쳤다.

“형, 이번에 연동 진짜 고생 많았어요.”

“뭐, 할 일이었지.”

“그쪽 업체 진짜 답 없던데.”

“그러게.”

그는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미워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그게 더 애매했다.

그들이 나를 밀어낸 건지, 내가 들어가지 않은 건지. 회사에서 정한 건지, 내가 이미 그런 사람으로 보였던 건지.

잘 모르겠었다.

그날 2차 자리에서 그들은 또 기술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음에는 어떤 걸 해보고 싶다느니, 어느 회사가 새로운 방식을 쓴다느니, 주말에 세미나가 있다느니.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형도 같이 가실래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토요일이었다.

일주일 내내 늦게 퇴근했다.

주말에는 그냥 쉬고 싶었다.

“난 됐어. 너희들 다녀와.”

“네.”

그들은 다시 자기들 이야기를 했다.

나는 술잔을 채웠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봐.

역시 저희들끼리다.

조금 뒤에는 나도 알고 있었다.

방금 그들이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는 걸.

그 사실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쪽을 오래 기억한다.

나는 꽤 오랫동안 내가 바깥에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정말 바깥에 있었을 것이다.

다만 언제부터였는지,

누가 먼저 선을 그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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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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