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12)

6

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12장

변화는 대개 발표보다 먼저 숫자로 왔다.

인원을 몇 명 줄이겠다는 메일이 온 것도 아니었고, 개발 조직을 재편한다는 공지가 나온 것도 아니었다.

대신 작은 결정들이 이어졌다.

채용이 미뤄졌다.

원래 뽑기로 했던 사람 한 명이 사라졌다.

외부 인력 계약이 하나 끝났고, 연장은 없었다.

다른 팀에서 빠진 일을 남은 사람들이 나눠 맡았다.

누군가는 퇴사했지만 바로 충원되지 않았다.

팀장은 회의 때마다 비슷한 말을 했다.

“당분간은 현재 인원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엔 별생각이 없었다.

회사란 원래 그랬다.

어느 때는 사람을 많이 뽑고, 어느 때는 줄였다.

경기가 안 좋으면 채용을 줄였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외부 인력이 빠졌다.

나는 그런 일을 여러 번 봤다.

이번에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이 스프린트 계획을 설명했다.

화면에는 다음 달 작업 목록이 떠 있었다.

해야 할 일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늘어 있었다.

누군가 물었다.

“이거 다 이번 달에 하는 건가요?”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순위 높은 건 다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은요?”

“추가 인원은 당분간 어렵고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팀장이 말을 이었다.

“대신 요즘 AI 도구도 많이 쓰고 있고, 실제 생산성도 올라가고 있으니까 그 부분 감안해서 계획 잡은 겁니다.”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AI가 한 명 몫 하나요?”

팀장도 웃었다.

“한 명까지는 모르겠고요.”

가벼운 농담처럼 지나갔다.

나도 웃었다.

그런데 화면에 있는 작업 목록을 다시 봤다.

예전 같으면 분명 사람을 더 붙였을 양이었다.

막내 개발자가 내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다 되려나.”

“우선 해봐야지.”

나는 습관처럼 대답했다.

회의가 끝난 뒤 자리로 돌아왔다.

새로운 티켓이 배정돼 있었다.

예전부터 미뤄졌던 데이터 정리 작업이었다.

대상 테이블이 많았고, 오래된 로직도 섞여 있었다.

예상 공수는 사흘.

나는 잠깐 웃었다.

한 달 전이라면 사흘이 맞았을 것이다.

지금은 어쩌면 하루 반이면 끝날 수도 있었다.

AI에게 테이블 구조를 보여주고, 관련 쿼리를 설명하게 하고, 변환 로직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됐다.

나는 작업을 시작했다.

실제로 빨랐다.

오전 안에 분석이 끝났다.

오후에는 코드가 나왔다.

다음 날 오전 테스트까지 마쳤다.

예상보다 하루 넘게 빨랐다.

팀장이 메시지를 보냈다.

이거 벌써 끝나셨어요?

네. 테스트 중인데 큰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곧 답이 왔다.

역시 AI 쓰니까 차이가 크네요.

나는 네 ㅎㅎ라고 답했다.

칭찬이었다.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었다.

그날 오후 전체 개발 회의가 있었다.

상위 조직에서 내려온 자료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프로젝터 화면에 숫자가 나왔다.

개발 생산성.

자동화율.

배포 빈도.

AI 도구 사용률.

예전 같으면 코드 품질이나 장애 건수를 더 많이 이야기했을 것 같은데, 요즘은 생산성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한 명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같은 인원으로 더 많은 기능을 만든다.

반복 작업을 자동화한다.

자료에는 그런 문장이 많았다.

발표자가 말했다.

“AI 활용도가 높은 팀은 동일 인원 대비 처리량이 확실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물었다.

“그러면 인력 계획에도 반영됩니까?”

발표자가 잠깐 멈췄다.

“당연히 장기적으로는 봐야겠죠.”

회의실이 조금 조용해졌다.

발표자는 바로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사람을 단순히 줄인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기존 인력이 더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방향입니다.”

나는 그 문장을 알고 있었다.

자동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듣던 말이었다.

반복 작업은 기계가 하고,

사람은 더 중요한 일을 한다.

좋은 말이었다.

문제는 더 중요한 일이 모든 사람에게 충분히 있는가였다.

회의가 끝난 뒤 복도에서 다른 팀 개발자를 만났다.

나보다 몇 살 어린 외부 개발자였다.

몇 년째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형님.”

“왜?”

“저 이번 달까지만 한대요.”

나는 잠깐 말을 못 알아들었다.

“뭐가?”

“계약이요.”

“왜?”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예산 줄인대요.”

“다른 데 가는 건 잡았어?”

“아직요.”

그는 웃었다.

“뭐, 또 구해봐야죠.”

말은 가벼웠지만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여기 오래 했잖아.”

“그러니까 더 오래 할 줄 알았죠.”

그가 웃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괜찮을 거라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우리 나이가 되면 일자리를 구하는 일이 예전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기술 하나만 보고 뽑는 곳도 줄었고, 연봉도 걸렸고, 나이도 걸렸다.

“연락해. 뭐 있으면 나도 알아볼게.”

“네. 고맙습니다.”

그는 먼저 갔다.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조금 전 회의에서 봤던 문장이 떠올랐다.

기존 인력이 더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

그 사람은 무슨 가치가 낮았던 걸까.

오래된 시스템을 잘 알았고, 장애가 나면 늘 먼저 불려갔다.

나와 비슷한 일을 했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며칠 뒤 막내 개발자가 내 자리로 왔다.

“선배님, 이거 잠깐 봐주세요.”

화면에는 AI가 만든 코드가 있었다.

“뭔데?”

“데이터 변환인데요. 실행은 되는데 결과가 좀 이상해요.”

나는 코드를 봤다.

조건 하나가 빠져 있었다.

“이거 예외 조건 빠졌잖아.”

“어디요?”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고객군은 따로 처리해야 돼.”

“왜요?”

“옛날 정책 때문에.”

“문서에 있어요?”

“아마 없을걸.”

막내가 웃었다.

“또 그런 거예요?”

“응.”

나는 설명해줬다.

왜 그런 정책이 생겼는지.

언제부터 적용됐는지.

무엇을 바꾸면 같이 확인해야 하는지.

막내가 메모했다.

“이런 것도 AI에 넣어두면 좋겠네요.”

“그렇겠지.”

“그러면 다음에는 안 물어봐도 되고.”

막내는 별뜻 없이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

그 친구가 자리로 돌아간 뒤 나는 한동안 화면을 봤다.

맞는 말이었다.

내 머릿속에만 있는 것을 문서화하고, AI가 찾을 수 있게 만들면 좋았다.

회사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었다.

특정 사람에게 의존하는 시스템은 위험했다.

누군가 퇴사해도 지식이 남아야 했다.

나도 수없이 그렇게 말해왔다.

문서화해야 한다.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지식을 남겨야 한다.

그게 맞았다.

그런데 그 말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이상한 질문 하나가 남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 시스템 안에 들어간 뒤에도,

회사는 나를 지금만큼 필요로 할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했다.

아직은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AI가 답을 잘한다고 해도 어떤 답이 맞는지는 사람이 판단해야 했다.

오래된 시스템은 문서보다 예외가 많았다.

현실은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그 주 금요일 팀 회의에서 다음 달 계획이 나왔다.

팀장이 화면을 넘기며 말했다.

“인원은 현재 그대로고요. 신규 충원 계획은 없습니다.”

한 사람이 물었다.

“외부 인력 추가도 없나요?”

“네.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팀장은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대신 자동화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자동화하고, AI 활용도 적극적으로 해주세요.”

나는 화면을 바라봤다.

몇 달 전만 해도 그 말을 들으면 반가웠을 것이다.

새로운 도구를 마음껏 써도 된다는 뜻이니까.

지금도 싫지는 않았다.

AI는 여전히 재미있었고, 실제로 도움이 됐다.

문제는 내가 그걸 너무 잘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이 빨라졌다.

한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양이 늘었다.

회사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회사는 당연히 계산했다.

더 적은 사람으로 같은 일을 할 수 있는지.

그 계산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노트북 화면 한쪽에는 AI 창이 열려 있었다.

나는 그날 마지막 작업의 코드를 붙여 넣었다.

이 코드에서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부분을 찾아줘.

몇 초 뒤 답이 나왔다.

AI는 정확하게 반복되는 부분을 찾아냈다.

나는 하나씩 지웠다.

코드는 짧아졌다.

더 단순해졌다.

사람이 하던 일도 비슷하게 정리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중복을 찾고,

불필요한 부분을 줄이고,

적은 자원으로 같은 결과를 만든다.

나는 그 생각을 멈췄다.

코드와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달라야 했다.

퇴근하면서 사무실을 둘러봤다.

빈 자리가 몇 개 보였다.

원래 누가 앉았는지 바로 떠오르지 않는 자리도 있었다.

사람이 빠지면 처음 며칠은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조금 지나면 익숙해졌다.

좋은 도구를 가진 개발자가 된 것과,

필요한 개발자로 남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

개발한당

KR | ID | EN
  • IDR
  • KOR
7.63 -0.01

2026.09.14 KEB 하나은행 고시회차 218회

다가오는 한인 행사일정

  • 등록 된 일정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