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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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이 좋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한 가지 덧붙입니다.

글 자체는 ChatGPT가 주로 썼고, 초안을 읽고 감수하거나 수정할 부분을 짚는 데는 Claude도 함께 썼습니다. 저는 전체 방향을 잡고, 제 경험을 넣고, 필요한 부분을 고치고 편집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굳이 나누자면
사건과 소재는 제 경험, 작가는 ChatGPT, 감수는 Claude, 편집은 제가 한 글​에 가깝습니다.


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4장

첫 회사에 들어갔을 때 내 책상에는 컴퓨터 한 대와 전화기 한 대가 있었다.

그리고 책이 많았다.

내 책도 있었고, 전에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두고 간 책도 있었다. 자바. 오라클. 유닉스. JSP. 서블릿. 자바스크립트. 책등에 적힌 이름만 보면 제법 대단한 개발자가 된 것 같았다.

실제로는 그중 절반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입사한 지 일주일쯤 됐을 때 팀장이 내 자리로 왔다.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

표지가 두껍고 제목은 영어였다.

팀장이 책을 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툭.

“이거 써봤어?”

나는 책 표지를 봤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아니요.”

“나도 안 써봤어.”

팀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번에 이걸로 해야 된대.”

나는 책을 한 번 보고 팀장을 봤다.

“뭘 만들면 되는데요?”

“회원 쪽.”

“회원이요?”

“가입하고 로그인하고 정보 수정하고 그런 거.”

그 정도 설명이면 끝인 것 같았다.

나는 조금 기다렸다.

팀장이 더 말해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가지도 않고 내 얼굴만 보고 있었다.

결국 내가 물었다.

“기존에 비슷한 거 있나요?”

“없어.”

“설계는요?”

“하면서 해야지.”

팀장은 그 말을 남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책을 펼쳤다.

목차부터 봤다.

처음 몇 장은 설치 방법이었다.

그다음은 예제.

그다음은 설정.

모르는 단어가 계속 나왔다.

나는 메모장에 단어를 적어두었다.

그날 오후 내내 책을 읽었다.

정확히 말하면 책과 씨름했다.

읽었다고 하기엔 이해한 게 별로 없었다.

설치부터 잘 안 됐다.

책에 적힌 화면과 내 화면이 달랐다.

메뉴 위치도 조금 달랐고, 버전도 다른 것 같았다.

한 시간쯤 지나서 옆자리 선배에게 물었다.

“이거 설치해보셨어요?”

선배가 내 화면을 보더니 말했다.

“아니.”

“그럼 이거 왜 안 되는지 아세요?”

“모르지.”

그리고 다시 자기 모니터를 봤다.

잠깐 서운했다.

조금 뒤 선배가 다시 내 쪽을 보며 말했다.

“안 되면 버전 낮춰봐.”

“왜요?”

“책이 옛날 거잖아.”

그 말이 맞았다.

버전을 낮추니 설치됐다.

나는 그날 그게 꽤 큰 발견인 것처럼 느껴졌다.

며칠 뒤에는 요구사항 회의가 있었다.

회의실이라고 해봐야 긴 테이블 하나가 있는 방이었다.

기획자 한 명이 종이를 들고 왔다.

A4 용지에 화면이 손으로 그려져 있었다.

아이디. 비밀번호.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버튼이 몇 개 그려져 있었다.

“여기서 가입하면 되고요.”

기획자가 말했다.

“이거 누르면 가입 완료.”

나는 물었다.

“아이디 중복이면요?”

기획자가 잠깐 생각했다.

“중복이면 안 되죠.”

“그럼 여기서 중복 체크를 하는 건가요?”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나는 종이에 메모했다.

“비밀번호 틀리면 몇 번까지 가능해요?”

“그건 왜요?”

“계속 틀리면 막아야 하나 해서요.”

기획자는 잠깐 다른 사람을 봤다.

다들 조용했다.

누군가 말했다.

“그냥 일단 로그인되게 만들어요.”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돌아오는 길에 선배가 말했다.

“너무 많이 물어보지 마.”

“왜요?”

“어차피 저 사람들도 몰라.”

나는 웃었다.

그게 농담인지 진심인지 알기 어려웠다.

며칠 동안 회원가입 화면을 만들었다.

화면을 만들고, 데이터베이스 테이블을 만들고, 값을 저장했다.

회원가입이 되자 로그인도 만들었다.

로그인이 되자 정보 수정도 만들었다.

하나가 되면 다음 하나를 만들었다.

그때는 시스템 전체를 먼저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눈앞의 화면이 동작하는지가 중요했다.

버튼을 눌렀을 때 다음 화면으로 가는지.

데이터가 저장되는지.

다시 불러왔을 때 같은 값이 나오는지.

안 되면 출력문을 찍었다.

여기까지 왔는지.

값이 뭔지.

어디서 죽는지.

로그라는 말도 썼지만, 지금 생각하는 로그와는 조금 달랐다. 화면에 숫자 하나 찍어놓고 어디까지 실행됐는지 확인하는 일이 더 많았다.

1

2

3

숫자 3까지 나오고 4가 안 나오면 그 사이가 문제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한 번은 밤 열두 시가 넘도록 오류 하나를 못 잡은 적이 있었다.

데이터는 분명 들어왔는데 저장이 안 됐다.

쿼리도 맞는 것 같고 연결도 살아 있었다.

몇 시간을 봤다.

결국 괄호 하나가 빠져 있었다.

그걸 발견했을 때 나는 소리를 질렀다.

“찾았다.”

옆에서 라면 먹던 선배가 물었다.

“뭔데?”

“괄호 하나요.”

“씨발.”

선배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날 우리는 새벽 두 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택시비는 회사에서 줬다.

다음 날 팀장이 물었다.

“어제 늦게 갔냐?”

“두 시쯤요.”

“그래? 고생했네.”

그게 끝이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 말을 칭찬처럼 받아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다.

외부 업체와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하는데 형식이 맞지 않았다.

팀장이 나를 불렀다.

“저쪽에 전화해서 물어봐.”

“제가요?”

“네가 만드는 거잖아.”

나는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받았다.

상대방도 개발자였다.

처음 통화하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데이터 연동 때문에 전화드렸는데요.”

나는 내가 아는 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모르는 용어가 나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네”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그 단어를 종이에 적었다.

그리고 책을 찾았다.

책에도 없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한글 자료는 거의 없었다.

영문 페이지 몇 개를 열었다.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필요한 부분만 찾았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까 말씀하신 게 이 방식 맞죠?”

“네, 맞아요.”

그 순간 나는 조금 안심했다.

알아들었다는 사실보다, 모르는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갔다는 게 더 중요했다.

그런 일이 반복됐다.

새로운 일이 생기면 책을 샀다.

모르는 말이 나오면 적어두었다.

안 되는 게 생기면 밤까지 붙잡았다.

누가 전체 그림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어디선가 정리된 설계 문서가 내려오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은 문서가 있었지만, 실제로 만들어야 하는 것과 달랐다.

그러면 그냥 만들면서 맞췄다.

나중에 수정하면 됐다.

수정하다 또 문제가 생기면 다시 고쳤다.

그게 개발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뒤에는 사람들이 설계라는 말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다.

프레임워크라는 말도 자주 들렸다.

표준이라는 말도 생겼다.

누군가는 개발 방법론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이상했다.

우리가 하던 일에도 원래 그런 이름이 있었던 건가 싶었다.

그때는 그냥 했다.

해야 하니까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 책을 봤다.

책에도 없으면 사람에게 물었다.

사람도 모르면 해봤다.

그리고 돌아가면 다음 일을 했다.

나는 그 시절 내가 특별히 용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방법이 없었을 뿐이다.

모르는 것을 이유로 멈출 수는 없었다.

회사도 몰랐고, 팀장도 몰랐고, 나도 몰랐다.

그런데 납기일은 알고 있었다.

아마 그게 그 시절 개발에서 가장 확실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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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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