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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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무도 모르는 시대


2장

그날도 허준을 보지 못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친구들이 전날 방송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제 허준 봤냐?”

“못 봤어.”

“또 밤샜냐?”

“응.”

그해에는 월요일과 화요일 밤이면 거리에 사람이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과장이었겠지만, 허준이 시작할 시간이 되면 식당에서도 채널을 돌렸고 학교 앞 술집에서도 TV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그 시간에 학교 근처 복사집에 있었다.

친구 셋과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출력물을 펼쳐놓고 있었다. 프린터에서 갓 나온 종이는 아직 따뜻했고, 바닥에는 잘못 뽑은 페이지가 몇 장 굴러다녔다.

“이거 몇 부 해야 돼?”

“다섯 부.”

“컬러로?”

“표지는 컬러로 해야지. 그래야 있어 보이잖아.”

우리는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다.

정확히는 사업을 시작할 돈을 받기 위한 제안서를 만들고 있었다. 사업을 해본 적도 없었고, 제대로 된 제품도 없었다. 그저 제안서를 잘 쓰면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친구 셋과 학교 근처 복사집에서 밤을 새우며 만든 제안서는 서른 장이 조금 넘었다. 표지를 컬러로 뽑았고, 제목은 최대한 거창하게 붙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만들겠다는 것보다 세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인터넷 사용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앞으로 모든 기업은 인터넷을 통해 고객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전자상거래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가 그 말을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신문이었을 수도 있고, 잡지였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발표 자료였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때는 그런 말을 쓰면 그럴듯해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학교 게시판에는 창업 지원사업 공고가 붙어 있었다.

청년 창업. 벤처 육성. 정보통신 산업 지원. 대학생 창업 경진대회.

이름은 조금씩 달랐지만 내용은 비슷했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지원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처음 공고를 본 친구가 말했다.

“이거 우리도 한번 내볼까?”

“뭘로?”

“그건 생각해보면 되지.”

지금 같으면 순서가 반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할 일이 있어서 지원금을 찾는 게 아니라, 지원금이 있으니 할 일을 생각했다.

그때는 그게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학교 선배 중에는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겠다고 돈을 받은 사람이 있었고, 다른 학교에서는 학생 몇 명이 만든 회사가 투자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몇천만 원.

어디는 억.

금액은 들을 때마다 커졌다.

처음에는 삼천이었다가 며칠 뒤에는 오천이 되었고, 한 달쯤 지나면 누군가는 그 회사가 몇 억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같은 학생에게도 그런 일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분위기였다.

우리도 제안서를 냈다.

발표 날에는 빌린 정장을 입었다.

넥타이를 제대로 맬 줄 몰라 친구가 인터넷에서 출력해온 그림을 보며 몇 번이나 다시 맸다. 심사위원들은 우리가 준비한 발표 자료를 넘겨보면서 이것저것 물었다.

“수익 모델은 어떻게 됩니까?”

친구가 대답했다.

“초기에는 무료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를 확보하고 이후 광고와 기업 제휴를 통해 수익화할 예정입니다.”

나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우리도 잘 몰랐다.

아마 심사위원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때는 다들 비슷한 말을 했다.

사용자를 먼저 모은다.

트래픽을 확보한다.

커뮤니티를 만든다.

그리고 나중에 돈을 번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는 나중 문제였다.

며칠 뒤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금액을 확인하고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몇 년 해도 만져보기 힘든 돈이었다.

친구가 먼저 말했다.

“야, 이거 진짜 하는 거네.”

그제야 다들 웃었다.

그날 우리는 학교 앞 고깃집에서 술을 마셨다.

회사 이름부터 다시 정했다.

처음 정했던 이름은 촌스럽다는 의견이 나왔고, 영어 단어 두 개를 붙이면 벤처회사 같다는 누군가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그 자리에서 대표도 정했다.

발표를 제일 잘한 친구가 대표가 됐다.

기획은 글을 가장 잘 쓰던 친구가 맡았다.

나는 개발을 맡았다.

누가 정식으로 역할을 정해준 것은 아니었다.

컴퓨터를 조금 더 잘 안다는 이유였다.

프로그램을 전공으로 배우긴 했지만, 그렇다고 뭘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래도 별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개발은 네가 해야지.”

친구가 말했다.

“그래.”

나도 대답했다.

그 정도였다.

사무실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공간도 하나 구했다.

작은 방에 책상 네 개를 붙였고, 지원금으로 컴퓨터를 샀다. 그때 처음으로 내 돈이 아닌 돈으로 꽤 좋은 컴퓨터를 샀다.

박스를 뜯을 때만 해도 정말 회사가 된 것 같았다.

우리는 명함도 만들었다.

내 이름 아래에는 ‘개발팀’이라고 적혀 있었다.

개발팀은 나 혼자였다.

처음 해야 할 일은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다음이 우리가 제안서에 쓴 서비스를 만드는 일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었다.

친구가 물었다.

“언제쯤 보여줄 수 있어?”

“뭘?”

“우리가 만든 거.”

나는 잠깐 생각했다.

“한 달?”

“그렇게 오래 걸려?”

“그럼 얼마나 걸리는데?”

친구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몰랐고, 그도 몰랐다.

결국 우리는 한 달이라는 날짜를 적어놓았다.

근거는 없었다.

며칠 동안 책을 샀다.

HTML 책. 자바스크립트 책. 서버 프로그래밍 책. 데이터베이스 책.

책상 한쪽에 책이 쌓였다.

필요한 기술이 생길 때마다 책을 한 권 더 샀다.

어느 날은 책을 펼쳐놓고 예제를 그대로 따라 쳤다.

화면에 버튼 하나가 나타났다.

버튼을 누르자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그게 뭐라고 우리는 다 같이 모니터 앞에 모였다.

“되는 거야?”

“응.”

“이게 우리 서비스야?”

“아직 아니지.”

“근데 되는 거잖아.”

친구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때는 돌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며칠 뒤부터는 밤을 새우기 시작했다.

낮에는 수업을 들었고 저녁에는 사무실로 갔다.

야식을 먹고 새벽까지 코드를 쳤다.

의자 두 개를 붙이고 잠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싫지는 않았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잘하면 무언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 무언가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도 강하지 않았다.

친구 중에는 성공하면 차부터 바꾸겠다는 놈도 있었고, 몇 년 뒤 회사를 팔겠다는 놈도 있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웃기만 했다.

내가 생각한 것은 조금 달랐다.

이걸 해보면 뭔가 알게 되겠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서비스라는 걸 어떻게 만드는지.

사람들이 정말 우리가 만든 걸 쓰는지.

그 정도였다.

어쩌면 처음부터 크게 성공할 거라고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실패했을 때도 생각보다 덜 아팠다.

몇 달 지나지 않아 계획했던 일정은 계속 밀렸고, 서비스를 열어도 사람이 오지 않았다. 홍보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영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개발만 끝나면 되는 줄 알았다.

개발이 끝난 뒤에도 해야 할 일이 끝없이 나왔다.

지원금도 생각보다 빨리 줄었다.

컴퓨터를 사고, 사무실 비용을 내고, 외주 디자인 비용을 조금 쓰고 나니 숫자가 금세 작아졌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걸 계속해야 하나?”

누군가 처음으로 말했다.

그 말을 꺼낸 순간부터 모두 조금씩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오래가지는 못할 거라는 것을.

회사는 조용히 없어졌다.

폐업이라고 할 만큼 거창한 절차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무실을 정리했고 컴퓨터를 나눴고 남은 돈을 정산했다.

명함이 한 상자 남았다.

나는 그걸 버리지 못하고 집으로 가져왔다.

한동안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

실패한 사업의 흔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뒤로 나는 개발 일을 계속했다.

취업 면접에서 누군가 물었다.

“학생 때 뭘 해봤습니까?”

나는 그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과 사업을 해봤다고.

지원금을 받아 서비스를 만들어봤다고.

서버도 직접 설치했고 데이터베이스도 만들었고 홈페이지도 만들었다고.

면접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실무는 좀 해봤겠네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네. 조금 해봤습니다.”

실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때도 잘 몰랐다.

하지만 그 말 덕분인지 나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 사업에서 남은 것은 별로 없었다. 돈도 없었고, 회사도 없었고, 서비스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도 한 가지는 남았다.

아무도 방법을 모른다고 해서 일이 시작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 모르면 책을 사면 됐고, 책에도 없으면 직접 해보면 됐다.

안 되면 다른 방법으로 다시 해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되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그 시절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것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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