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인도네시아에서 살겠다고 마음 먹은건 2019년에 발리에서 였습니다.
근 2년간을 발리에서 살다가 펜데믹이 오면서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다가 어차피 집에서 원격으로 온라인 수업만 할거면 문화적 혜택이 더 많은 자카르타에서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발리를 떠나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었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중 한명이 자기도 곧 다른 섬으로 발령(만디리 은행에 다니는 친구였거든요)이 될거라 발리를 떠나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 친구 말이 발리의 여신은 사람을 유혹한다(?) 라는 표현으로 "너도 머지 않아 발리로 다시 돌아오게 될거야" 하더라구요.
종종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는 했었습니다. 19금 이야기로.... 발리 여자들의 매력 때문에 인도네시아를 겪어본 사람들은 다시금 돌아오게 하는 힘이 있다는 내용의 이야기들... 비슷한 맥락이려니 하고 웃으며 넘겼었습니다.
제가 본업이 새우장수(실제로 새우를 팝니다??)라.... 주기적으로 숨바와 섬을 갑니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를 타면 롬복을 경유하거나 발리를 경유하게 되거든요. 대게는 발리를 경유하게 되는데 발리 공항의 흡연장소는 옥상(?)에 있는 야외라서 환승 시간이 빠듯하지 않으면 항상 한대 피우고 환승을 합니다.
오늘도 숨바와를 가기 위해서 발리에서 환승을 하기 위해서 공항 대기를 하면서 흡연장소를 갔는데... 저 멀리 가루다 동상을 보면서... 큰놈들 대학 보내면 꼬맹이들 데리고 다시 발리로 와야지.... 하는 생각을 혼자 하고 있더군요. 발리의 여신이 저를 이끄는 건지... 발리에 도착하면 발리의 기후 때문인지... 발리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매번 듭니다.
아내는 저에게 그러더군요... 발리 살 때가 가장 심적으로 평안했던게 아니냐고.... 그 또한 맞는 말 같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시간적,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시기를 발리에서 보냈던 것 같아요. 평생을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보지 못했고, 다음날 무엇을 해야 하나 매일 잠들기 전에 계획을 세우고 동선을 그리는 것이 평생의 습관이었는데 발리에서 살 때는 그런 다음날의 계획, 걱정 이런거 없이 진정한 휴식기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항상 손에 들고 있던 "플랭클린 플래너"는 평생의 계획, 한해의 계획, 한달의 계획, 매일의 계획을 요구 합니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아주 업무적인 것까지 기록하다보면 내가 세웠던 평생의 계획에 어느덧 도달해 있다는 논리인데요... 그런 생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인지 다음날의 계획을 자기전에 이미지 트레이닝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계획, 약속이 없는 하루는 저를 초조하게 했는데 발리에서 살면서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처럼 오늘 못하면 내일하지... 이런 생활을 처음 접할 수 있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공항에서 환승을 대기하면서 다시금 상상을 해봅니다. 소박하고 바쁘지 않았지만 마음의 여유가 많았던 그때의 발리생활로 4~5년 후에 다시금 돌아갈 수 있을까.... 비가 올때면 거실(?)에 물이 튀고... 두번만 허우적 거려도 끝에 닿을 수 있는 작은 수영장... 정원에 가끔 뱀도 나오고... 새는 둥지를 트는.... 기사가 없어도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서 아이들 학교를 등하교 시키고 저녁노을 보러 집사람과 뚝방길을 라이딩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