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제 설악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비도 오고 바람도 세게 불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내일 저도 포함이지만 안전운행 하시고 무사완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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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 배번은 445번부터 453번까지였다.
대회가 시작되고 상당히 긴 업힐을 만나자,
팀원들은 정상에서 만나자며 각자 먼저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무섭게 치고 나가는 팀원들의 등판에 붙은 배번 446번, 447번, 448번, 449번이 차례로 멀어졌다.
멋지게 댄싱을 치며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고, 가볍게 페달링을 하며 지나가는 라이더도 있었다.
그렇게 팀원들은 저 멀리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고,
가장 느린 445번인 나만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고 있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어느 순간부터 안개가 슬슬 짙어지더니, 나중에는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허벅지는 터질 것 같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 설상가상으로 속도계마저 갑자기 먹통이 되어버렸다.
GPS도 경사도도 보이지 않는 패닉 상태에서 서서히 앞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속도계가 안 되니 이곳이 우측 오르막으로 가야 하는지,
좌측 오르막으로 가야 하는지 도무지 구분이 안 가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때 저 앞 안개 속에서 한 라이더가 보였다.
올 블랙 져지에 블랙 빕, 그리고 올블랙 자전거를 탄 라이더가 묵묵히,
아주 열심히 페달을 돌리며 한쪽 오르막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짙은 안개 사이로 그의 등판에 붙은 배번이 보였다.
[444]
444번. 내 바로 앞 번호였다.
우리 팀은 아니었지만 내 바로 앞 번호이기에
나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끝없는 업힐이 계속되면서 정신이 완전히 혼미해질 때쯤,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444번의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저기요... 혹시 속도계 되나요?"
하지만 그는 고개는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낮고 기계적인 목소리로 툭 던지듯 말했다.
"거의 다 왔어요."
그 대답을 이정표 삼아 또다시 10분 넘게 끝없는 오르막을 계속 올라갔다.
하지만 정상은 나올 기미가 없었고,
지칠 대로 지친 나는 힘이 다 빠져 서서히 뒤로 처질 것 같았다.
우리가 다시 멀어지려 하자,
앞서가던 444번은 아까와 똑같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똑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의 다 왔어요."
그 순간, 사방을 가두고 있던 안개가 거짓말처럼 스르륵 걷히기 시작했다.
시야가 트이며 눈앞의 풍경이 드러난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정상 표지판이 아니라 까마득한 절벽 낭떠러지였다.
"으아악!"
깜짝 놀란 나는 비명을 지르며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브레이크를 잡았고,
자전거와 함께 옆으로 완전히 넘어지며 겨우,
정말 겨우 낭떠러지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도로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방이 적막했다.
여기가 대체 어디지? 분명 내 바로 앞에 가던 444번은 어떻게 된 거지? 설마 떨어진 건가?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기어가듯 낭떠러지 가까이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밑에는 빽빽한 풀숲 외에는 자전거 파편 하나, 사람의 흔적 하나조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멍하니 서 있는 그때,
핸들바에 달린 가민속도계 화면이 '삑-' 소리를 내며 갑자기 다시 켜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손목에 찬 워치 진동과 함께 귀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우리 팀원의 전화였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누르고
여보세요라고 막 입을 열려던 그 순간,
어디선가 조용히,
아주 조용히 아쉬움이 가득 섞인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
..
..
..
"……거의 다 왔는데."